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유명한 거장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토스카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피렌체에서 화가이며 조각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당시 대단히 유명했던 베로키오의 명성은 베네치아시가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장군의 기념물 제작을 그에게 맡길 정도였다. 훌륭한 공방에서 젊은 레오나르도는 확실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리라. 주물 공작과 기타 금속 공예의 비법을 전수하고, 모델의 모습을 습작하며 본격적인 그림과 조각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했을 것이다. 또한 자연을 관찰하는 법과 원근법, 안료의 사용법에 대한 기초를 철저히 습득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천재성과 기질
사실 많은 훌륭한 화가와 조각가가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배출되었다. 그중 레오나르도는 범상치 않은 천재였다. 지금까지 보존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스케치북과 노트북을 통해 우리는 그의 확장된 정신과 엄청난 생산성에 놀랄 수밖에 없다. 특히 그가 학자가 아닌 피렌체의 미술가였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는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술가의 임무는 더 철저하게, 더 열정적으로, 더 정확하게 눈에 보이는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레오나르도는 자기가 읽은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언제나 그것을 실험으로 해결했다. 그는 자연에 대한 깊은 호기심과 창의적 정신으로 모든 것에 도전했다. 그 모든 것이 그의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었고, 결국 이것이 그의 예술의 기초가 되었다.
레오나르도는 당시 대중으로부터 이상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면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는 위대한 미술가이자 훌륭한 음악가로 존경받았으나 그의 사상과 지식의 범위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레오나르도는 그의 저술을 한 번도 출판한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미술가로 봐주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에 대한 이 모든 탐구는 미술에 필요한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수단이었다. 그는 그가 사랑하는 회화 예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싶었고, 미술을 과학적인 토대 위에 놓음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문 교육, 소위 학예에 포함할 수 있는 몇몇 교양 과목과 손을 써서 하는 일을 구별하여 고대의 속물주의를 명문화했다. 레오나르도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그림 또한 학예에 포함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는 단순히 누구나 그림을 주문하는 공방의 주인쯤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할지 말지는 그의 결정에 따라 정해졌고, 그의 그림은 미완성일 때가 많았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그의 작품은 불행하게도 그가 원숙기에 완성한 몇 개의 작품뿐이며, 보존 상태도 매우 나쁘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벽화인 최후의 만찬을 볼 때, 우린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이 그림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서 식당으로 사용하던 긴 홀의 벽화로 그려진 것으로, 성경 이야기가 이처럼 가깝고 실감 나게 그려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사람들은 미술 작품이 얼마나 실감 나게 묘사되었는지에 따라 평가했다. 첫 평가가 끝나면 이제 이 새로운 그림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이 그림 속엔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과 연결되는 성경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 마태복음 제26장 -
21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예수는 방금 비극적인 말을 했고 그의 곁에 있던 사도들은 이 계시를 듣고 공포에 놀라 몸을 움츠린다. 예수의 말이 불러일으킨 흥분에도 이 그림에는 혼란한 구석이 없다. 십이사도들은 몸짓과 움직임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세 사람씩 네 무리로 자연스럽게 나뉘어 보인다. 그림 속 변화와 질서가 어우러진 모습은 아름다울 정도이다. 우리는 심지어 이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도 여전히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화면 구성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위대함은 구성이나 소묘의 기술과 같은 기법을 넘어서서 인간들의 행위와 반응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화면 안에 그 모습을 생생하게 전개한 그의 상상력에 있다.
◎ 참고도서 -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C 초 미켈란젤로의 회화와 조각 (0) | 2022.04.28 |
---|---|
16C 초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미술 (0) | 2022.04.27 |
16C 초 미술가들의 사회적 위치 변화와 건축 (0) | 2022.04.25 |
15C 북유럽 미술과 판화 기술의 발전 (0) | 2022.04.24 |
15C 북유럽 미술과 고딕 전통의 유지 (0) | 2022.04.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