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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16C 초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미술

by 행운지킴이 2022. 4. 29.

율리우스 2세가 미켈란젤로를 로마로 초청했을 때도 그의 이름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이 작품들을 완성한 뒤 그의 명성은 과거 어떤 미술가도 누려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명성이 그에겐 독으로 작용했다. 군주와 교황들이 이 늙어가는 거장의 봉사를 받기 위해 열띤 경쟁을 하는 동안 그는 점점 더 철저하고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내면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존경을 받았지만, 그의 성질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을 사기도 했다. 미술가의 지위는 이제 그가 젊은 시절에 알고 있던 것과 완전히 달라졌고, 단지 기술자로서의 조각가나 화가가 아닌 미켈란젤로 그 자체로 존재했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독립성을 그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브라만테가 미완성을 남겨놓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둥근 지붕을 씌우는 작업을 한 후, 작업에 대한 보수를 거절한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이 대성당을 위해 한 일을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봉사로 생각했던 것이다.

 

라파엘로 산치오

 

1504년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가 피렌체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을 무렵, 움브리아 지방의 우르비노라는 작은 도시에서 피렌체로 온 한 젊은 화가가 있었다. 라파엘이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한 그는 라파엘로 산치오였다. 그는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공방에서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고, 라파엘로의 스승인 페루지노도 미켈란젤로의 스승과 레오나르도의 스승처럼 대단히 성공한 미술가들의 대열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페루지노는 감미롭고 경건한 화풍의 제단화를 통해 일반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전체적인 화면의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공간의 깊이를 묘사하는 방법과 좀 더 생명력을 가진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레오나르도의 스푸마토 기법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는 자연의 충실한 묘사를 희생함으로써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를 창조했던 화가였다.

 

스승의 화풍을 재빨리 익히고 흡수한 젊은 라파엘로는 피렌체로 향했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라는 천재들이 미술의 새로운 길을 열고 있었고, 그는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 차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이 레오나르도와 같은 광범위한 지식도, 미켈란젤로와 같은 정력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영향력 있는 후원자들의 마음에 들 수 있었고, 이 선배 거장들을 따라잡을 때까지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

 

많은 사람에게 라파엘로는 그저 감미로운 성모상을 그리는 화가로 인식되어 있다. 게다가 그 성모상은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더 이상 하나의 그림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미켈란젤로가 그러했듯, 라파엘로가 그린 성모상도 사람들에게 성모의 진정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이 가진 대중적인 호소력은 단순하고 알기 쉬운 작품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다. 사실 이 겉으로 보이는 단순함은 깊은 생각과 세심한 계획, 예술적인 지혜로 완성된 것이다.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는 수세대에 걸쳐 완전함의 기준으로 간주하여졌다는 것에서 고전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라파엘로가 그의 스승인 페루지노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인물이 가진 평화롭고 조용한 아름다움에 충만한 생명력을 덧입혔다. 그의 작품은 마치 이것 이외의 다른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태초부터 그렇게 존재했었던 듯이 말이다.

 

라파엘로의-대공의-성모
대공의 성모 - 라파엘로

 

라파엘로는 수년간 피렌체에서 머물다 로마로 갔는데 율리우스 2세는 이 젊고 사교성 있는 미술가에게도 일감을 찾아주었다. 교황은 라파엘로에게 바티칸 궁 안의 스탄차로 알려진 방들의 벽면을 장식하는 일을 맡겼고, 그는 이 방의 벽과 천장에 완전한 디자인과 균형 잡힌 구성의 프레스코를 완성함으로써 그의 능력을 입증했다. 다만 축소된 도판에서는 그림의 진가를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는 것이 좋다. 프레스코를 직접 볼 때와는 다르게 등신대로 서 있던 인물들이 축소된 도판에서는 여러 인물의 모습 속에 흡수되어 각 인물을 잘 구분하기 어려우며, 세부만을 따로 찍은 도판에서는 인물들이 담당하던 전체적인 구성의 한 축을 담당하는 톱니바퀴라는 역할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파엘로가 부유한 재력가의 별장에 그린, 보다 작은 규모의 프레스코에는 이 관점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라파엘로는 즐거운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갈라테아를 그렸다. 이 아름답고도 유쾌한 그림은 풍요롭고 복잡한 구도 속에서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제공해 준다. 그는 인물들을 배치하는 탁월함과 구도를 만드는 고도로 숙련된 솜씨로 인해 후배 미술가들에게 찬양받았다. 미켈란젤로가 인체의 묘사에 있어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인정받았듯, 라파엘로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습을 완벽하고 조화롭게 구성하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 참고도서 -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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