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0년경 이탈리아 도시들의 모든 미술 애호가들은 회화가 완성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레오나르도 등의 거장들은 이전 세대의 염원을 모두 이뤘고, 당시 사람들은 그들의 작품이 심지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가장 유명한 조각 작품들까지 능가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앞으로 위대한 미술가가 되고 싶은 이에게 당시의 이런 분위기가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거장들의 작품에 감탄하면서도, 미술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남아있지 않은 것인지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일부 미술 지망생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미켈란젤로의 수법을 모방하려고 했다. 그들은 미켈란젤로의 나체상들을 그대로 베껴서 그들의 그림에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상관없이 집어넣었다. 이처럼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이 미켈란젤로 작품의 유행에 동조하여 단순히 그의 수법을 모방하던 시기를 후대의 비평가들은 매너리즘 시대라고 불렀다.
르네상스 그 이후의 노력
하지만 젊은 미술가들 모두가 그렇게 어리석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선배를 능가하려고 노력했고 이는 사실 과거의 거장들에게 바치는 최대의 찬사이기도 했다. 사실 위대한 거장들 자신도 어느 정도는 실험을 시작했다. 바로 그들의 명성과 만년에 누린 명예가 그들이 구도나 채색에 있어 새롭고 비정통적인 효과를 시험할 여유를 가지게 했고,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게 했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모든 관례를 대담하게 무시할 때가 많았고 특히 건축에 있어서 고전적인 전통의 신성 불가침한 규칙들을 버리고 그 자신의 기분과 변덕을 따르고는 했다. 이런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예술가의 기발한 착상과 창안을 찬양하는 데 익숙하게 만들었다. 이런 대선배가 있었기에 젊은 미술가들은 독창적인 창안으로 대중을 놀라게 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다소 재미있는 디자인들도 생겨났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미술가는 피렌체의 조각가이자 금세공사인 벤베누토 첼리니로, 그는 자신의 생애를 기록한 유명한 자서전을 통해 그 시대의 생활상에 대한 소중한 자료들을 제공했다. 그는 거만하고 잔인하며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안절부절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싸움도 하고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는 정말로 그 시대가 낳은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그저 공방의 주인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다투어서 호의를 구하려 하는 미술의 대가가 되는 것을 뜻했다. 사실 첼리니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교묘한 창안은 그가 왕의 금고에서 금을 운반하다가 네 명의 강도에게 공격받았지만 혼자서 모두 물리쳤다는 이야기보다 재미가 덜하다. 그가 만든 매끈하고 우아한 인물의 모습은 다소 지나칠 정도로 정교하고 장식적이기 때문이다.
첼리니의 태도는 그전 세대가 이룬 것보다 더 흥미 있고 비범한 것을 만들려는 당대의 불안정하고 열광적인 노력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코레조의 제자였던 파르미자니노의 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인체의 비례를 기묘한 방식으로 길게 늘여 놓았는데, 이는 파르미자니노가 무지하거나 무관심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진 형태를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는 완벽한 조화에 관한 고전적인 해결 방식만이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정통적인 수법을 피하고 싶어 했고, 그는 일관성 있게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이런 관점에서 선배 거장들이 이룩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파괴하면서까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모색했던 파르미자니노를 비롯한 그 당시의 모든 미술가는 최초의 현대적인 미술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시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이 기묘한 시대의 다른 미술가들은 선배들을 능가하기 위해 그처럼 절망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평범한 수준의 기량과 솜씨에 만족하는 이들의 노력 가운데 예외적인 것이 없지는 않았다. 이탈리아 이름으로는 조반니 다 볼로냐 혹은 잠볼로냐라고 알려진 플랑드르의 조각가 장 드 불로뉴가 제작한 머큐리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생명이 없는 물체의 무게를 극복하고 공중을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듯한 조각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이 불가능한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이 조각상은 아주 교묘하게 균형이 잡혀 있어 실제로 빠르고 유연하게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같이 보인다. 잠볼로냐는 본래의 무거운 재료 덩어리를 생각나게 하는 조각이라는 분야의 규칙에 도전하여 그의 목적을 달성하며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 참고도서 -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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