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북유럽에서 시작된 전문화 경향은 17세기에 들어서 더 극단적으로 되었다. 자기의 전문 분야에서 가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기도 한 그들은 진짜 전문가들이었다. 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더욱 훌륭한 화가라도 부끄럽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바다 풍경을 전문으로 그렸던 화가 중 한 사람인 지몬 데 블리헤르의 작품을 보면 네덜란드 화가들이 바다의 분위기를 얼마나 놀랄 만큼 단순하고 솔직한 방식으로 표현했는지를 알 수 있다. 미술사상 최초로 하늘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네덜란드 화가들은 그림을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극적으로 시선을 끄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세계 한 부분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얀 반 호이엔
얀 반 호이엔은 이런 점을 발견했던 최초의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풍경화가 클로드 로랭과 거의 동시대 사람이었다. 조용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회고적 정경을 담은 클로드의 풍경화와 간결하고 솔직한 얀 반 호이엔의 그림을 비교하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 두 작품은 너무 달라서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호이엔은 클로드처럼 고상하고 품위 있는 신전과 매혹적인 숲속의 오솔길 대신 소박한 풍차와 고향의 들판을 그렸다. 하지만 이처럼 평범한 풍경을 평온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정경으로 변모시키는 방법을 반 호이엔은 알고 있었다.
영국인들이 클로드의 작품 세계에 매료되었을 때, 당시 영국인들은 클로드의 작품 세계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나 정원을 픽처레스크라고 불렀다. 이후, 이 단어는 성이나 석양뿐 아니라 돛단배나 풍차 같은 소박한 사물에도 적용되었는데 이런 단순한 사물에까지 사용이 확장된 것은 그것이 클로드의 그림을 연상시켜서가 아니라 반 호이엔과 같은 거장의 그림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박한 풍경 속에서 한 폭의 그림을 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이들은 바로 네덜란드 화가들이었다.
렘브란트 반 레인
여기서 네덜란드가 낳은 최고의 화가이며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힐 렘브란트 반 레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렘브란트는 레오나르도나 뒤러처럼 그가 관찰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으며, 미켈란젤로처럼 후세까지 존경받는 천재도 아니었다. 또한 루벤스처럼 학자들과 의견을 교환했던 달필의 외교 사절단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렘브란트에게 이러한 거장 중 누구보다 친숙한 느낌이 있다. 그것은 그가 성공했던 젊은 시절부터 외로운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를 읽을 수 있는, 자서전과 같은 일련의 자화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부유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 입학했으나 화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포기한 그는 스물다섯이 되던 해 암스테르담에 정착해 초상화가로서 눈부신 성공을 거둔다.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한 후 쉬지 않고 작업을 하던 그는, 그의 첫 부인이 사망하면서 상당한 재산을 남겨 주었으나 그즈음 그의 인기는 점차 떨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는 두 번째 아내와 아들의 도움으로 완전한 몰락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도움으로 만년의 위대한 걸작을 그릴 수 있었으나, 이 충실한 반려자들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1669년 그의 인생이 끝에 다다랐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헌 옷 몇 벌과 그림 그리는 화구뿐이었다.
그림 속, 렘브란트의 노년 모습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모습을 아주 성실히 관찰했고, 살아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을 화폭에 담았다. 인간의 표정에 내포된 비밀에 대해 성실하고 집요하게 탐구했던 화가의 시선으로 빚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프란스 할스의 생생한 초상화와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실감 나는 스냅 사진 같은 할스의 그림과 인물의 전 생애를 담고 있는 듯한 렘브란트의 그림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것이 적절할 리 없기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그림의 완성을 판단할 권리는 화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화가가 그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그때가 그림이 완성된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의 그림 중에는 단순한 스케치 형태로 완성된 것도 있지만 그런데도 그 그림 속 인물들에겐 생명감이 느껴진다. 사실 역대 거장들의 초상화 중 가장 뛰어난 것일지라도 그것은 그림 속 인물의 단편만을 담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위대한 초상화에서는 다르다. 실제 인물과 대면하고 그 체온을 느끼고 감정을 공유하는 그 모든 것들을 그의 초상화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다.
◎ 참고도서 -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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