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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17C 전반 루벤스와 생명력, 그의 영향

by 행운지킴이 2022. 5. 10.

생명력과 활력을 부여하는 붓질

 

사실 교회나 유럽의 왕이나 군주로부터 새로운 주문을 받으면 그는 채색을 한 작은 스케치만을 그리고는 했다. 그런 스케치에 담긴 구상을 큰 화폭으로 옮기는 일은 그의 제자들이나 조수들이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승의 구상대로 그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마치면 루벤스는 그제야 붓을 들고 손질했다. 그는 자신의 손길이 닿으면 그림에 생기가 돈다고 확신했는데 마술사와 같은 그의 솜씨는 모든 것을 생기발랄하고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루벤스 예술의 핵심이었다. 그의 간단한 소묘 작품이나 재미 삼아 그린 그림에서도 이런 그의 완벽한 기량이 확실히 드러난다.

 

루벤스의 딸을 그린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보면 단순한 소녀의 정면 초상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숨을 쉬고 맥박이 뛰고 있는 듯 보인다. 이 그림과 비교해보면 이전 시대의 초상화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그렸다고 하기엔 현실감이 아주 부족해보이는 게 사실이다. 루벤스는 티치아노보다도 붓질을 더욱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했고 이는 회화적인 수단을 통해 생명력과 활력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거대하고 다채로운 화면을 손쉽게 구상하는 천부적인 솜씨와 그 속에 충만한 활기를 부여하는 탁월한 재간이 조화로 루벤스는 전무후무한 명성과 성공을 누렸다. 신교와 구교의 사회적 긴장이 절정에 달한 유럽에서 그는 가톨릭 진영의 화가로서 독자적인 지위를 획득했다. 권력자들로부터 많은 그림 주문과 귀빈 대접을 받으면서 때로는 미묘한 정치 외교적인 임무를 맡기도 했다. 그런 자신의 독특한 지위를 스스로가 어떻게 의식하고 있었는지를 귀족임을 암시하는 검을 차고 있는 자화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우의화는 보통 따분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루벤스의 시대에는 그것이 오히려 사상을 표현하는 하나의 편리한 수단이었다. 루벤스가 스페인과의 화평을 설득하기 위해 영국 국왕 찰스 1세에게 선물로 가져갔던 그림에는 평화의 축복과 전쟁의 공포가 풍부한 세부 묘사, 빛나는 색채와 어우러져 생생히 대조되고 있다. 그에게는 이 상상의 장면들이 맥 빠진 추상이 아니라 박진감 넘치는 현실과 같았던 것이다.

 

페터-파울-루벤스의-평화의-축복에-대한-알레고리
평화의 축복에 대한 알레고리 - 페터 파울 루벤스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이상화된 형태는 그저 그에게는 거리가 멀고 추상적일 뿐이었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모두 그가 실제로 보고 좋아했던 살아있는 사람들이었고 이렇게 활기차게 삶을 즐기는 그의 자세가 그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 깃든 삶에 대한 환희가 작품이 걸린 공간을 생명력 넘치게 하는 걸작품으로 살아남게 했다.

 

안토니 반 다이크

 

루벤스의 유명한 제자와 조수 중 가장 독보적이고 위대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라면 안토니 반 다이크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는 루벤스로부터 모든 기법을 터득했으나 그가 가진 기질과 분위기는 스승과 매우 달랐다. 힘이 없고 다소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그림은 제노바의 근엄한 귀족들과 찰스 1세, 그의 왕당파 당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632년 찰스 1세의 궁정 화가가 된 그는, 이름도 영국식으로 안토니 반다이크 경으로 불렸다. 오늘날 당시의 영국 사회에 대한 회화적 기록을 가지게 된 것은 모두 반 다이크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초상화 속에 인물의 귀족적 자질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화가였기에 귀족 사회로부터 초상화 주문이 쇄도했다. 그는 그 주문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고 많은 조수를 데리고 있었지만, 기준 미달의 초상화를 만들어 낸, 안 좋은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명문 출신다운 귀족적인 품위와 신사적인 유유자적한 태도의 이상을 그림 속에 구체화한 그의 위대함은 굳건할 것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루벤스는 스페인을 여러 번 여행하던 중에 젊은 화가를 만났다. 그는 디에고 벨라스케스로 마드리드의 펠리페 4세의 궁전에서 확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이제까지 이탈리아에 가본 적은 없는 그였지만 모방자들의 작품을 통해 카라바조의 수법에 크게 감명받아 자연주의의 방침을 흡수했다. 벨라스케스는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데 자신의 예술을 바쳤다.

 

루벤스의 충고로 위대한 거장들의 그림을 연구하기 위해 휴가를 얻어 두어 번 이탈리아 여행을 한 것을 빼면 그는 펠리페 4세의 궁정에서 유명하고 존경받는 화가로 지냈다. 그의 주요 임무는 왕과 왕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었는데 그는 마치 마법을 부린 듯 이들의 초상화를 초유의 매혹적인 그림들로 변모시켰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카라바조의 수법에 대한 집착을 버렸고, 루벤스와 티치아노의 필법을 연구했으나 이제 자연에 접근하는 그의 방식에 남에게 빌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참고도서 -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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