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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17C 전반 전원 풍경의 인기와 루벤스의 예술

by 행운지킴이 2022. 5. 9.

회고적이며 아름다운 그림

 

아카데믹한 거장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면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로마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정열적으로 고전 시대의 조각상들을 연구했다. 순수하고 장엄했던 고대 도시들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연구에 기반한 아름다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낸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조용하고 햇빛으로 가득 찬 남국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무덤을 둘러싸고 묘비명을 읽는 인물들의 두려움과 경이적인 몸짓, 그리고 이 인물들의 움직임이 어우러진 회고적인 정경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림의 전체 구도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그 단순함은 심오한 미술적 지식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회고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이탈리아로 귀환한 프랑스 화가인 클로드 로랭이다. 푸생보다 여섯 살 아래인 그는 아름다운 남부의 색조 속에 위대한 과거를 연상시키는 장엄한 유적들이 있는 로마 주변의 평원과 언덕들을 주로 스케치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완성한 그림과 동판화에서는 과거의 향수 어린 꿈과 같은 정경에 들어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소재만을 선택해, 장면을 현실과 다르게 보이는 금빛 광선이나 은빛 대기 속에 모든 것을 녹여냈다.

 

클로드-로랭의-아폴론에게-제물을-바치는-풍경
아폴론에게 제물을 바치는 풍경 - 클로드 로랭

 

클로드 로랭은 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에 처음으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했고, 그가 죽고 백 년쯤 뒤에는 사람들이 그의 기준에 따라 실제의 풍경을 평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부유한 영국인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클로드의 꿈을 현실화하여 그들의 소유지 안의 정원을 꾸미려고도 하였다. 이렇듯 영국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 속에 이 프랑스 화가의 영향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페터 파울 루벤스

 

북유럽 사람으로 카라치나 카라바조 시대 로마의 분위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접한 페터 파울 루벤스는 1600년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스물세 살의 나이에 로마로 왔다. 그는 로마, 제노바, 만토바에서 미술에 관한 많은 논쟁을 귀담아듣고, 많은 고금의 명작들을 연구했으나 어떤 운동이나 유파에 가입한 것 같지는 않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들은 항상 다채로운 사물의 표현에 관심이 많았고 그 역시 플랑드르 인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충실하게 그리기 위해 알고 있는 모든 기법과 수단을 이용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이탈리아 화가들이 신성시했던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품위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성장한 루벤스였기에 이탈리아에서 전개되고 있던 새로운 미술에 대해 경탄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은 굳건히 유지할 수 있었다. 자기 주위의 세계를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림으로써 보는 사람이 화가 자신이 즐긴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화가의 임무라는 신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카라바조의 예술과 카라치의 예술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루벤스는 자연을 연구할 때 보인 카라바조의 타협 없는 성실성과 카라치와 그의 유파가 고전적인 전설과 신화를 그림의 주제로 부활시키고 신자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감동적인 제단화를 구성한 방식을 모두 높게 평가할 수 있었다.

 

루벤스는 이탈리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우고 1608년에 안트웨르펜으로 돌아왔다. 사실상 알프스 이북에서 그에게 필적할 만한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교회와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거대한 화면을 선호하는 취향이 있었고 그는 이 취향을 플랑드르에 도입했는데 이것이 권력자들을 만족시켰다. 그는 거대한 화면 속에 인물들을 배치하고 전체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빛과 색채를 구사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루벤스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이 전통적인 주제-성인들에게 둘러싸인 성모-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힘들이지 않고 다루었는지는 교회당의 주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그림의 습작을 보면 알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이전의 어떤 그림보다 더 많은 움직임과 빛, 공간감이 넘치고 있으며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세부를 잘 살펴보고 난 뒤에 다시 한번 화면을 전체적으로 보면 루벤스가 이처럼 많은 등장인물을 한데 묶어, 흥겹고 장엄한 축제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것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이런 그에게 당연히 수많은 그림 주문이 쇄도했지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플랑드르의 많은 재능 있는 화가들이 그의 밑에서 배우고 싶어 했고 루벤스는 그들 모두를 통솔할 수 있는 능력과 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도서 -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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