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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17C 전반 카라치와 카라바조의 경쟁

by 행운지킴이 2022. 5. 8.

카라치와 카라바조

 

안니발레 카라치는 베네치아파, 특히 코레조파의 미술을 배운 화가 집안의 일원으로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존경했던 라파엘로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그는 라파엘로의 단순성과 아름다움을 회복시키고자 했으나 당시 그가 속해 있던 로마의 집단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의 양성이라는 기치에 힘을 싣고 있었다. 그가 그린 죽은 그리스도의 시체를 보며 슬퍼하는 성모를 묘사한 제단화를 보면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카라치는 죽음의 공포와 아픔의 고통을 보는 이에게 전이시키지 않기 위해 세심히 배려하고 있다. 그림 자체는 초기 르네상스 그림처럼 구도가 단순하고 조화롭지만, 구세주의 몸 위에서 아른거리는 빛의 묘사 방식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표현 방식은 지극히 바로크적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본래의 목적-신자들이 그 앞에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고 예배하면서 묵상하도록 만들어진-을 생각해보면 그저 그림이 감상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카라바조와 그의 일파들에게 카라치의 회화 방식이 취향에는 맞지 않았겠지만 두 화가는 퍽 절친한 사이였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카라치와는 완전히 달랐다. 추한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경멸할 만한 약점으로 여겼을 정도로 그가 원하는 것은 그가 본 그대로의 진실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인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미술에 관심을 쏟고자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관중에게 충격을 주고 싶어 하며 아름다움과 전통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건 그가 이와 같은 비난을 받은 최초의 화가 중 한 사람이자 비평가들에 의해 예술관이 하나의 문구로 집약된 첫 번째 화가라는 것이다. 그들은 카라바초를 자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카라바조의-의심하는-토마
의심하는 토마 - 카라바조

 

그의 작품은 삼백 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담하다. 성 토마를 묘사한 작품을 보면 그 파격을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런 그림이 당시의 신앙심 깊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사도들은 늙고 평범한 노동자로 묘사되었고, 성 토마는 꼴사나운 동작으로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고 있는 이 작품이 불경스럽고 극악무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성경을 보라며 그들의 말을 일축했을 것이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요한복음 20장 27절

 

카라바조의 자연주의를 추하다고 생각하든 아름답다고 생각하든지 간에 자연을 충실하게 모사하려는 그의 의도는 돈독한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듯하다. 카라바조는 성경을 꼼꼼히 읽고 구절을 깊이 생각하며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듯이 그려보고자 했을 것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는 등장인물들을 보다 사실적이고 실감 나게 표현하려 했다.

 

카라치와 카라바조는 19세기의 유행에서는 배제되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 다시 진가를 인정받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 두 사람이 당시의 회화에 불어 넣은 자극과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당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로마에서 작업을 했으며, 유럽 전역의 미술가들이 이 로마로 모여들어 회화에 대한 논쟁에 참여하고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최신의 미술 운동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곤 했기 때문이다. 미술가들은 민족적 전통과 기질에 따라 서로 경쟁하는 로마의 여러 유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거기에 가담하고자 했고, 그중 뛰어난 사람은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기의 독자적인 표현법을 개발했다. 이렇게 자기의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킨 많은 이탈리아 거장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귀도 레니일 것이다.

 

귀도 레니

 

볼로냐 출신의 이 화가는 명성이 드높은 카라치파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 레니가 그린 로마에 있는 한 궁전의 천장 프레스코는 라파엘로의 프레스코를 생각나게 하는데 사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라파엘로를 떠올리길 원했다. 아마 현대의 비평가들이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은 그가 라파엘로를 모방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실 라파엘로와 레니가 회화에 접근하는 방법은 매우 달랐다. 라파엘로의 작품의 지닌 미적 감각과 평온함은 그 자신의 성격과 예술관에서 배어 나온 것이라면, 레니의 그림은 이러한 화법의 선택이 일종의 원칙이라고 느껴진다.

 

미술은 이제 미술가들 앞에 놓인 여러 방법 중에서 원하는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레니가 자신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고상한 이상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완벽하고 이상적인 형태를 만들려는 그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카라치와 레니, 그 추종자들은 고전 시대의 조각상들에 의해 설정된 기준에 따라 자연을 이상화하고 미화하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이것은 신고전주의적 또는 아카데믹한 방침이라 칭해졌다.

 

 

◎ 참고도서 -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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